7월 29일 6시 30분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7시 20분 용정을 향하여 출발했는데
용정 까지는 5시간 30분 걸린다고 합니다.
중간에 꿀파는 집에 들려 팔아주지는 않았지만
소주 컵으로 조금씩 시식을 했는데 꿀 맛이 우리나라 토종꿀 같아서
진짜라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10시 00분 인삼 파는 집에 도착하여 휴식 겸 볼일을 보고
뜰에 피어있는 달맞이 꽃을 보았더니 처다보기도 싫습니다.
가면서 이것을 찍느라고 정작 찍어야 할 것을 못찍엇다 생각하니 ??
10시 45분 안도를 지나 1시 25분 용정에 도착하여
용문교를 건너고, 룡정 중학교에 들려 윤동주 시비를 구경한 다음
기념관에 들려 박명록에 서명하고 같이 간 분과 함께 1만원씩을 기부했습니다.
용정의 헤란강을 버스를 타고 건너는데
강의 최 상류인듯 물이 거의 없는 조그만한 냇가 입니다.
용정은 조선족들이 제일 먼저 정착한 곳이며
유서 깊은 유적지를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강건너 비암산의 끝자락에 보이는 일송정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지나갑나다.
옛날에 이곳에는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독립투사들이 비밀 회합을 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일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독립투사의 혼이 담긴 곳이라 하여
약품으로 그 소나무를 죽였는데 후에 이 곳에 다시 소나무를 심었지만
나무가 자라지 않고 죽어버렸다는데 최근에 한그루를 심었는데 자라고 있다는군요.
2시 15분 곰 사육장에 도착하여
웅담주 한잔씩을 시식했지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곰 사육장을 출발하여 시골길을 달립니다.
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동안
우리나라 같으면 자주 눈에 띄어야 할 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더니 중국은 56개 민족이 살면서
인구가 많기 때문에 년간 묘지로 잠식되는 토지가 엄청나
86년 부터 법을 만들어 매장을 못하게 하고 화장을 하게 하였는데,
국민들의 저항이 심해서 일부는 몰래 매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이 사실을 당국에서 알게되어 묘지를 파게 하고
그 뼈를 다시 화장하게 하였더니 그 후에는 매장하는 사람이 없다네요.
어쩌다 보이는 묘지는 그 이전에 쓴 것이라고 합니다.
3시45분 두만강이 보이고 건너 민둥산 중턱에
다음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글자가 보인다.
강 건너 북한쪽에 기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이고,
조금 더 가니 남양시가 보인다.
4시 10분 도문에 도착하고 낮은 뚝방을 올라서니
바로 밑에 나룻터가 보입니다.
도문은 많은 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여서 물도 제법 흐릅니다.
배는 대나무로 엮어 만들었는데 의자 두개가 놓여 있어서
사공 까지 합하면 5인승 입니다.
5천원의 승선료를 주고 두만강 물위에 왔다간 흔적을 남기고 싶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룻배를 탔습니다.
의자 하나에 양산 하나씩을 주는데
앞 뒤 사진을 찍을 때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즉석에서 같이 간 일행이 노래 한곡을 부릅니다.
두만 강 검은 물에 노젓는 뱃 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실고..............
물 색갈이 완전히 검은 물이어서 물어보았더니.
백두산에서 부터 흘러내려와 중 하류인 무산 까지는 맑은 물인데
거기에 북한의 무산 철광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 곳을 지나면서 부터는 불쌍한 강이 되었다고 합니다.
두만강은 중국과 북한이 함께 관리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텃치를 못한다고 합니다.
사공한테 들은 이야기,
얼마 전 까지는 북한 사람들이 강을 넘어오면 밥도 주고 숨겨주기도 했는데
이유인 즉슨 불쌍하기도 하지만 모든 일을 기계를 쓰지않고 사람이 하고 있는데
그들이 부지런 해서 부족한 일손을 체워주는 역활을 해서 좋고
북한 사람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으니 서로 이익이 맞아 떨어저
오래도록 함께 지내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숨겨주다 걸리면 하루에 감자 두 알씩만 주는 감옥에 가서
15일 동안 있어야되니 그짓도 못 한단다.
연길에서 타는 열차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서둘러 도문을 출발하여
2차선 시골길을 달리는데 5시 25분 인적 없는 산길 옆 북한 초대소에 들어갑니다.
들어가는 입구 화단에서 예쁘게 핀 범부체꽃을 DC 에 담았습니다.
사향이 들어간 우황 청심환과 수를 놓아 그린 그림을 팝니다.
대형 수 놓은 그림도 좋았지만 북한산 우황 청심환이 진짜라는 말을 들었는지라
값을 조금만 깎아주면 옆 사람과 함께 살려고 했으나
너무 비싸고 정찰제여서 그만 두었습니다.
연길에 도착할 무렵 산악회에서 함께간 가이드가 알려주는 말에 의하면
기차표 10좌석이 모자라 비행기표를 끊었다고 하면서 나이 순으로 나누자고 합니다.
가족 끼리 오신 분들은 이산가족이 되어서 씁쓸한 생각이 들지만
비행기 표마저 없었더라면 백두산 등정하다가 소천지에서 되돌아 나왔듯이
난처한 일이 벌어질번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23명의 일행이 둘로 나뉘어 비행기와 기차로 심양까지 가게 되었다.
7월 29일 오후 6시 10분 연길에 도착하여
턱걸이로 비행기 타는 쪽으로 끼어 6시 30분에 비행장 쪽으로 가다가
7시 10분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하여 청와대에(음식점 이름) 도착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탑승 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하기에
시내 관광이나 하자고 했더니 진달래 광장으로 안내 하고는
이곳을 구경한 다음 8시 50분에 내린 자리에서
공항으로 출발 한다고 하며 자유시간을 줍니다.
광장 한 가운데에 연변을 상징하는 꽃인 진달래 탑이 있고
뒤에는 주 공안국 건물이 우뚝 버티고 서 있습니다.
진달래 탑을 가운데 놓고 지붕 없이 개방된 채로
많은 상업 시설들이 있는데 비가 오면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해 집니다.
3인승 자전거가 보입니다.
몇 개의 당구 다이가 있고, 콜라를 파는 곳, 아이스크림 파는 곳,
악기를 다루며 연주하는 사람이 있고, 린나이 스케이트 빌려주는 곳,
자전거 대여해 주는 곳, 놀이 시설이 있는가하면
사이사이에 조그마한 화단이 잘 가꾸어저 있고 꽃이 피어 있다.
내가 구경한 것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두 개의 노래방 입니다.
한 곳에서는 애들이 나와서 고향의 봄과 좋아해요 사랑해요. ....를 부릅니다.
엄마들 이 함께와서 셈을 치루어 줍니다.
다른 한 곳에서는 성인들이 둘러 앉아 울고넘는 박달재를 비롯하여
서울에서 부르는 노래를 조금도 어색함이 없이
음정 박자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잘도 부릅니다.
길림성은 2개의 현과 6개의 시로 나뉘어저 있습니다.
( 안도현,왕정현. 룡정, 연길, 도문, 훈춘, 과룡, 돈화.)
연변의 조선족 자치구는 길림성의 4분의1을 차지합니다.
비행기는 10시 05분 출발하여 11시 05분에 심양 도착했는데
기차를 타고오는 팀과 합류하기 위하여
기차역있는 쪽으로 40분쯤 이동하여 밤 12시 10분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7월 30일 5시 30분 모닝콜
숙소에서 출발 직전 비가온다.
한국에는 많은 비가 와 안성천이 붕괴 되었답니다.
여지것 잘 도와준 날씨가 심통이 났나보다.
6시 25분 역전으로 출발하여 6시 30분 도착
차안에서 열차타고 오는 일행을 기다립니다.
단동 식당
역전에서 6시45분에 버스를 갈아타고 밤 새도록 고생하며
열차에서 도착한 일행들을 만나 합류한 다음
7시 30분에 단동을 향하여 가는 도중에 아침을 먹고,
10시 40분 휴게소에 도착하는 동안
비가 왔다가 그치고를 몇 번 반복한다.
아무레도 오늘은 비와 함께 일정을 보내야만 될 것 같다.
12시 30분 면세점에 들렸는데 나는 검은 깨 한 봉달이 5kg을 25000에 샀다.
12시 45분 둘째날 항구에서 나와 점심을 먹었던 조선관에 도착하여
식사하고 나오는데 두번째 만난 북한 여자가 아는채 합니다.
기분이 좀 그러기에 입구에서 기념사진 하나를 찍었습니다.
8시 40분 식사끝 ???
9시 05분 단동으로 출발
차를 타고 가면서 가이드의 입담.
중국에선 여자가 밥을 않한다.
여자가 파워가 더 세다. 여자가 세탁도 않한다.
음식점에서 이빠진 사라(그릇)는 장사가 잘 된다는 표시.
1시25분 압록강 선착장에 도착하여 유람선을 탔습니다.
압록강도 양쪽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죄를 짖고
물 속에 들어가 있으면 어느 쪽에서도 못 잡아간단다.
압록강 물도 깨끝하지 못하고 더럽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안개 때문에 보이질 않는다.
유람선 타고 북녁땅 옆까지 갔지만 희미한 안개
속에서 조그만 어선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두 사람
조그만 군함에서 보초서고 있는
군인 한사람이 인상 깊었다.▲
비 오고 안개 깊은 곳에서 낚시하고 있는
몇 명의 저 사람들은 낚시가 직업인듯 싶다.▽
6.25 때 미군의 폭격으로
강 중심에서 북한 쪽으로 다 무너지고
중국 쪽으로만 그데로 남아있다.
선착장에 돌아와 유람선을 포함시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천둥 번개와 더불어 비가 오기 시작한다.
버스에 돌아와 자리하고 있는데 비줄기는 굵어 지고
안개 때문에 인천에 갈 배가 못 뜬단다.
우리 일행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발이 묶이게 되었다
하룻밤 묶지나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금새 도로 바닥에 물이 벙벙하더니
인도와 차도의 턱까지 물이 차고 거리가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버스는 선착장에 머물다가
어데론지 천천히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더니
점심을 먹기 전 깨를 샀던 면세점 앞에 멈춰섯다
갑자기 일정이 바뀌어서 적당히 갈 곳이 없는가 봅니다.
중국 사람들이 옥을 좋아하여 옥 공예가 발달 했는지
호텔 로비나 면세점 진열장 한켠에
옥을 조각하여 만든 작품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어항과 배추는
호텔 로비에 있는 것입니다.
배타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결국 배를 타지 못하고 단동의
Hong yuan hotel 홍얀 호텔에서 짐을 풀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아래 사람들 가운데 바닥에 제기가 떨어저 있습니다.▼
지금 부터는 집에 갈 일이 걱정입니다.
그 다음 날이나 다음 날도 성수기 이기 때문에
1 주일이 걸릴지 2 주일이 걸릴지 기액이 없다고 합니다.
비행기로는 다음 날 갈 수 있는데
그 이후로는 비행기 표도 구할수 없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일정이 있을 터인데 난감한 일 입니다.
덕분에 부분적이나마 단동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연변의 진달래 광장 처럼 활기차지는 못해도
또 오후에 비온 탓인지 시람은 많지는 않았다.
중국 사람들은 남 여 모두 제기차기를 좋아하나 봅니다.
위에 사진 둘은 우리 나라 사람 운동장에 둘러서서
배구하는 것 처럼 패스하며 제기를 차고 있습니다.
한켠에선 악기를 든 사람이 연주를 하고
주위에서 몇 사람이 모여서 듣고있다.
반대쪽 광장에서는 이름은 기억에 잘 안 나지만,,,,체조를 한다.
일행 중에 몇 분이 따라 하면서 우스워 죽겠단다.
광장을 지났는데 일행중 두분이 화장실에 가고 싶단다.
그래서 중국여자 2사람이 지나가기에 화장실을 물으니
알아 듣지를 못한다
한참을 입으로 여러가지 소리를 쉬~ 내어 보아도
따라하면서도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남자인 내가 중국 여자에게 손을 앞으로
대고 쭉 뻗으며 쉬~ 하고 말 할수도 없고
여자들이 엉거추춤 앉아서 쉬~ 하고 말하니까
그때사 알아 듣고 저희들끼리 죽는다고 웃으며
손짓으로 광장 끝에 있다고 가르켜준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문이 닫혀있다.
문엔 WC 라고 크게 겸해 써있다.
마침 청소부 한 분이 서있기에 WC라는 글자를 가르키며
똑똑 두두렷더니 금새 알아차리고 손가락으로 광장
가운데 있는 큰 건물을 가리킨다. 반가워서 갔는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다. 물어 보았더니 1원을 내야 한단다.
1000원짜리 하나를 꺼내서 주었더니 안된다고 하면서
중국 돈이나 딸라를 달라고 합니다. 중국 돈이 없고 급해서
그런다고 몸짖을 하며 말하니.. 들어가 일을 볼수 있었다.
두 사람이 천원을 내고 소변을 본 셈이다.
나오면서 옛날에 우리나라도 그랫다고 말했더니
지금도 우리 나라에 돈을 내고화장실을 가는데가 있다고 말한다.
옛날에 우리나라도 그랫었지 라고 생각하다가 우리 나라도 ?
옛날에 서울역이나 번화한 곳에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어디에 있는지 함 가보고 싶다.
.야외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는데
단란주점인지 노래자랑인지는 모르겠으나
화려하고 잘 꾸며놓고 짜임새있게
잘 운영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일행들은 피곤해서 들어가겠다고 해서 먼저 가고
함께간 두 사람은 좀 더 걷고 가기로 하고 가는데
진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숫불구이, 숫불 꼬치구이,
숫불을 일구어 인도에서 즐비하게 벌려 놓고 고기를 굽던가,
꼬막 큰 것 같은 조개를 구워서 먹는다.
6시면 상가는 철시를 하고
상가 앞에서 깔판을 놓고 숫불에 고기를 구워서 먹는다.
낮에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해서 뛰어 다니고 상가가 철시하면 ???
주로 서민들은 이처럼 뒷골목 문을 닫은 상점 앞에
차려놓은 선술집에서(포장 마차가 아님 ) 실비로 마음을
달래며 한 잔씩 걸치는 것 같다. 그래도 젊고, 차려입은
사람들은 노상 테이블 의자에 앉아 맥주와 소주를 마신다.
길 거리 아무데나 좌판을 펴놓고
장사를 하는 것 같습니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기는 해도
조그만한 상에서 먹습니다.
어둠 침침한 뒷 골목에서 이처럼 음식을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자전거가 한군데 모여있는데 뭔지 모르겠읍니다.
부페식으로 음식을 접시에 골고루 쭉 담아놓고 팔면서
자리에 가지고 가서 앉아 술과 생맥주를 먹는다.
오른쪽 아래 접시에 쭉 담아 놓은 것을
마음에 드는 데로 사가지고 테이블에 가서
술을 시켜 먹는 것 같습니다.
가이드와 함께 갔더라면 분위기 잡고
생맥주 한 잔 쪽소리 내는 건데 아쉽습니다.
월요일 아침 5시 40분 단동을 출발하여
8시 25분 심양 공항에 도착하고,
10시에 심양을 이륙하여
11시 40분~11시 45분 인천공항에 안착했고
우여곡절 끝에 5박 6일 일정이 모두 끝났는데
추가요금이 215.000을 더 내라는 군요.
마무리 하면서,
다녀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백두산을 가는 길은
첫째 비행기, 둘째 배로 러시아를 거처서,
세째 배로 중국 단동을 거처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26일출발 했는데
마침 주위에 7월 29일 부터 8월 1일 까지
항공편을 이용해서 백두산을 다녀와 후기 글을
올려놓은 것을 보니 서파와 북파를 다 종주 했네요.
우리가 A 코스를 가기 위하여 소천지를 지나다가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서 되돌아 왔는데 청계산악회에서는
두코스를 다 완벽하게 종주하고 왔군요.
서파 코스는 10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산에 오르는 과정을 읽어보니 처음 부터 허가를 내어야 되나봅니다.
그런데 우리팀은 그런 것이 결여되었던 것 같습니다.
44명이 허가를 받았는데 43명만 왔다고 허가가 안 떨어저
지연되었다고 하니 여행을 갈때는 심사 숙고하여
줄이 쓸만한지 잘 사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날자로는 3박 4일 : 5박 6일이지만 청계 산악회는 첫 날 부터 호텔에서 자고
우리는 첫 밤은 배의 갑판 위에서 자고 둘째 밤은 열차를 타고 가면서 자고
실제로 배에서 두밤은 생각했어도 열차에서의 두밤은 생각하지 못 했다가
5밤 중 한 밤만 호텔에서 잔다는 걸 알았을 땐 좀 황당했지만
출발하기 전 날에야 알게 되어서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돈으로 비교해보면 90만원 : 70만원이지만
학생들이라면 젊으니까 모질게 고생해도 괜찮겠지만
나이드신 분들은 다시 한 번 고려해 볼 문제 입니다.
끝으로 러시아로 가는 길인데
잘 아는 연변에서 오신 분을 만나 백두산을 다녀왔다고 하였더니
어느 길로 갔느냐고 묻길레 단동으로 해서.......말 했더니
대뜸 고생 많이 했겠다고 합니다.
왜 편한 길 놔두고 고생 길을 택했냐고 묻습니다.
연변 사람들은 모두 속초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를 거처 왕래를 한다고 합니다.
어째튼 날씨가 도와줘서 기리기리 추억에 남을 여행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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