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26일 오후 4시 30분, 잔뜩 찌뿌려 흐린 날씨.
생각만 해도 나에게는 먼 일만 같았던 백두산 등정이 실현되어
제 1 국제 여객선 연한부두에서 책크를 했습니다.
여행사가 아닌 산악회를 따라가기로 한 것은
부드러운 여행 보다는 백두산 능선을 한번쯤 올라 타고
넘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5시 30분 여객선의 고동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배는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룻밤 머물 자리를 확인한 다음
안에 있기도 답답해서 이곳 저곳을 돌아보며 구경하는데.
언제인가 인천에서 몇 번 유람선을 타고 가며
새우깡을 주면 좋아라 따라오는 갈매기를 보면서
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카메라에 담기 시작 했습니다.
배 안은 3개 층이 객실이다.
물론 밑에 층은 화물칸이고,
우리가 머물은 곳은 가격이 제일 싼 일반 객실이다.
넓은 공간을 칸칸이 크기가 다르게 오픈시켜 막아 놓은 객실 중에
우리 객실은 24인 1실이고 우리가 이번에 함께 고락을 하게될 일행은
남 여 섞여서 23명이다.
참 세상이 좋아젔나보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몇 백명쯤 탄 것 같다.
보이스카웃을 비롯하며 여러 단체에서 온 학생들,
어딜 가느냐고 물었더니 백두산이라고 대답하는 학생도 있고
고구려 유적을 탐방하러 간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가을 날 석양에 시골 대나무 밭에 모여들어 조잘대는 새 때 처럼
참기 힘들 정도로 시끄럽게 조잘거리지만 이들을 아무도 제제하려 들지를 않는다.
내 자식 손자 같아서 모처럼 나온 여행길을
자유롭게 즐기도록 참으며 자제하고 있는 것 같다.
거기다가 앞뒤 양 옆 칸칸마다 우렁거리는 TV 소리며,
힘차게 울려나오는 엔진의 커다란 소리 때문에
하룻밤 긴 시간 동안 제데로 깊은 잠 자기는 틀린성 싶다.
우리 일행이 머물고 있는 곳에도 싸가지고 온 안주에 술판이 벌어지더니
일행 중에 한 분이 화투 한갑을 사가지고 와서 화투판이 벌어젔다.
점 백에서 시작하더니 지금은 점 이백이 되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금새 밥줄이 길게 생겨 늘어진다.
식당에 들어서 한바퀴 눈을 돌려 보았더니 내부가 생각보다 작고
반찬 몇 가지 놓아두고 판 하나에 자유롭게 담아가는 자유배식이다.
저녁 먹고 가판에 나아가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고 있는데
한 방울 두 방울 비가 오기 시작하고 앞으로 객지에서 보낼 일정이 걱정된다.
그래도 우리 일행이 가는길엔 좋은 날이 펼처질거라 굳게 믿어본다.
왜냐하면 복 받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니까 밝은 마음과 희망을 걸어보고 싶은 것이다.
다시 시작된 Go stop 은 막힘 없이 잘 돌아가는데
엔진소리 따라 돌아가며 쉼 없이 굴려 내는 소리 힘차게 들린다.
어느 때쯤 한솜 자고나면 아침 먼동이 트고 중국에 도착해 있겠지.
그래 이제는 고 스톱이나 구경하다 자야겠다.
벌써 골아 떨어진 사람, 고스톱 치는 사람,
이런 와중에도 소책자를 보는 사람이 있네 ?
어느정도 나이도 들었건만 차분이 책을 보는 그 일행이 부럽게 느껴진다.
밤 10시 30분, 초저녁 분위기에다 뛰어다니며 장난치는 아이들
칸마다 잡음 때문에 크게 키워놓은 TV의 웅웅거리는 소리 때문에,
산만해서 잠을 청해도 오지 않는가 보다.
들어누어 있다가 일어나 고스톱판을 기웃거리기를 몇 번 하는 분들이 있는 걸 보면
후덥지근한 실내 공기까지 더하여저서 너 나 없이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것 같다.
칸마다 어른들은 화투판이 하나씩 이루어지고
애들 칸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홀짝놀이 아니면
메트레스 위에 동전을 올려놓고 옆을 두둘겨
동전이 뒤집어지면 가저가는 놀이를 하던가,
여자들은 무릅치고 손벽친 다음 엄지손가락 내어 보이는 놀이
그 외에도 여러가지 놀이를 하면서 마냥 즐거운 밤을 보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조용히 꿈나라에 들어가 헤메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한 물 지난 사람인 것 처럼 생각된다.
이처럼 다양하고 혼란스런 분위기 속에서도 가장 청순하게 보이는것은
여자애들이 하고있는 엄지손가락 놀이인 것 같다.
다행인 것은 12시면 소등을 한다고 하니 얼마 남지않은 시간이 지나고
어둠이 온 실내에 깔리고 나면 인간들이 일으키는 소리는 없어지고
기관 돌아가는 발동기 소리만 통통거리겠지.
낮에는 푸른 바다를 밀고가며 잔잔한 바다에 거품을 흩어놓으며 뱃길을 내고 갔었는데,
밤 11시 30분, 조금 있으면 소등과 함께 취침해야 하는데도 끈끈하고 후덥지근한 실내,
밖에 나아가면 조금 좋아지려나 싶어 갑판에 나가 바라본 바다는 날아갈듯 시원하고
밀어 일으키는 파도는 앞 쪽에서 부터 회오리 바람 처럼 둥글게 회전하며
강하게 일어났다 살아지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보아도, 보아도 지루한 줄 모르게 갖가지 형상을 만들어내는 물살,
언제까지고 그 배가 일으키는 물살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싶다.
강렬하게 솥아났다 흩어지는 뱃길을 만들며 나아가는 배는
잠시 후 내가 자고있는 동안에도 어둠을 뚫고 잘도 달리겠지 ?
난생 처음으로 배위에서 하룻밤 긴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느낌이 묘하다.
승용차로 아스팔트 길을 달리는 것 같기도 하고,
기차를 타고 따그닥 따그닥 거리며 이음 부분을 넘어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소등해서 조용해지니 밑에서 부터 전해저 오는 등을 밀어올려 치는 느낌과
엔진의 소음 때문에 쉽게 잠을 자기가 어렵다.
그랬어도 어느 사이에 잠을 잤던 모양이다.
단동항이 가까워젔는지 6시가 되니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맨 꼭대기 갑판에 올라 사방에 펼처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니
바다 물 빛은 어딜 보아도 검은 색이다.
흙 빛 바다를 힘차게 밀어나아가며 물가퀴가 먹고 내어뱉어 만든
물길만이 검은 물을 뒤껴 커다란 수로를 만들고 푸른빛 물길로 바꾼다.
어둠이 깔리는 밤까지 따라오던 갈매기는 보이지 않고
된장 잠자리 두마리가 눈 앞을 어른거리며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마도 육지에서 부터 묻어온 것 같은데 망망 대해로 날아간듯 해서
죽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얼마 후에 식당 처마 끝에 봍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잘 못 조작되어 비디오로 찍힌 것을
사진으로 바꾸니까 사진이 쫄았네요.
시차가 한국 시간이 중국보다 1시간 빨르고 이후 현지 시간을 사용 합니다.
9시 30분 하선하기 시작했는데 단동항의 컴퓨터의 고장으로
기내에서 광장가지 나오니 10시 10분.
광장에서 10시 45분 까지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타고온 배에서 하역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보다 많이 낙후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처럼 크고 많은 짐을 모두 사다리를 타고 끌고 내려오면서
무게에 못이겨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세우고 묶어 놓은 짐이 풀어지면
궁굴려 내리니 깨어지는 짐이 있으면 남아날 짐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
여기에서 또하나 느낀 것은 씨벌 씨벌 하며 욕하는 소리를 듣고서
여기에서 저처럼 혹사 당하며 일하는 건장한 청년들은 모두 조선족인듯.
그처럼 오랫동안 기다린 뒤 항내 버스를 타고 출구 까지 나왔는데
개찰구에서 또다시 기다리다가 11시 30분에야 항구를 빠저나와
11시 40분이 되어서 투어 버스를 타고 출발하게 되었다.
어렵사리 항구를 빠저나온 느낌은 지옥을 탈출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
단동에서 식사 후 3시간을 가서 심양에 도착하여 열차를 타야 된단다.
이곳은 말로 밭갈이를 하고, 벼농사가 있고 심양에는 거의 주산물이 옥수수다.
차창 넘어 보이는 밖의 풍경은 세발 차가 있고 시장에는 과일
도로는 맨 처음 새마을 사업을 하던 시절 우리 나라와 같고
집은 흙벽돌로 쌓은 기와집이다.
압록강은 넓고 섬이 103개가 있는데 3개만 중국 것이란다.
그중 월량도는 현재 외국인 회사가 개발중이며 강 건너는 신의주다.
단동에서 부터 백두산까지 집 뜰에나
야생으로 핀 풀 꽃들은 우리나라와 똑 같습니다.
음시점 주위에서 담은 다알리아 입니다.
12시30분 조선 대 반점이라는 음식점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기위해 4층으로 안내되는데
너무 높다고 투덜거렸더니 높은데서 바라보아야 신의주가 잘 보인단다.
식사가 끝날무렵 북한 아가씨 한 사람이 한복을 입고 심부름을 하기에
노래하나 불러보라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크를 꼽고 "반갑습니다" 노래를 불러준다.
우리 일행은 즉석에서 11,000원을 거두어 팁으로 주었다.
이곳에서 취직을 할려면 노래를 잘 하던가 악기를 잘 다루어야 된단다.
식사가 끝나고 식당 앞 강가에 나와
압록강 철교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려는데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와 유람선을 타니 그때 찍으라 한다.
먼 곳에 히미하게 철교가 보인다.
오후 2시 00분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비가 온다.
한결같이 붉은 벽돌집들이 보이는데 하나의 집이라도 굴뚝이 둘이면 세대 수가 둘이란다.
어디를 보아도 보이는건 옥수수밭 뿐이다.
지형이 낮은 언덕형이어서 논농사를 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논 농사는 보기 어렵고,
계단식 밭까지 일구어 경작하는 밭에는 모두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드넓은 옥수수 밭을 카메라에 담을려고 애를 써보아도 빨리 달리는 차에서
가로수의 방해를 받으며 DC 에 담기란 내 실력으로는 않되는 일이었다.
차안에서 겨우 담은 옥수수 꽃 입니다.
오후 4시25분 심양 IC에서 나옴
심양의 황강을 지나 도시에 들어오니 꽃이 보인다.
우리 나라 도시의 길가에 심어놓은 꽃과 똑 같은 것들이다.
.
에피소드로 심양에서 외국인이 길을 몰라 물어보려면
여러 사람에게 물어본 다음 많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야한단다.
마음이 뒤틀려 있는지 반대쪽을 가르켜줘 낭패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2006년 7월 27일 오후 4시45분
청나라 때 누르하치가 살았다는
고궁에 도착하였습니다.
건축물의 색상이 북경보다 화려하답니다.
그 이유는 한족, 몽골족, 만족의 세 민족이 어울려 살았기 때문이고,
만족은 말이 죽으면 제 까지 지내준다고 하며.
누루하치는 까마귀와 강아지가 자기를 구해주었다고하여 좋아했는데
고궁엔 까마귀를 부르는 까마귀 대가 세워저 있더군요.
사진의 上 은 그 당시의 저울이고
下 는 해시계 입니다.
오후 5시 50분 열차 탑승
생전 처음 해보는 것도 많다. 3층 침대 칸이다.
1칸에 3층 짜리가 둘이니 6명이 자는 셈이다.
더 자세히 묘사하면 우리나라 열차의 의자 두개를 하나로 이어
길게 마주보게 해놓고 양 의자 뒤에 벽을 세우고 3층으로
해놓았으니 둘을 합하면 6인실이 되는 것이다.
베낭을 메고 젊어서 해야할 열차 여행을 나이 들어
하게 되었으니이 것도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
너무나 힘들 것 같아서 다리에 힘 없는 사람이 갈려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야할 문제이지만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쓸만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3층으로 올라가라고 합니다.
지금 시각 오후 9시 30분 이 높은 곳에서 내려가
칸의 반대쪽 끝에있는 화장실을 좁은 통로를 타고 갔다 와야겠다.
10시가 되면 소등을 한다고 해서 잠잘 준비를 해야되니까.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칸칸마다 변소지기가 있는데
열차가 역에 정차할 때마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출발하면 열어줍니다.
그러니 아무리 급해도 열차가 멈춰있으면 볼일을 못보는 것이지요.
우리 나라도 옛날에는 그랬겠지만
열차에서 일을 보면 선로 위로 곧바로 직행이라고 하니 이해가 됩니다.
일어나 앉으면 천장에 머리가 걸려 구부리고 앉아야하는 침실에서
어느듯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어 하차 준비를 합니다.
차창으로 보이는 연변의 산과 들녁엔 여러가지 풀 꽃들이
많이 피어있고 한가로이 펼처지는 초지에는 소와 말이
고삐에 메어저있는 긴 끈을 땅에 박고 한가로이 풀을 뜻고 있으며
밭에는 감자며 콩이며 팥, 논 보다는 받 농사가 주를 이룬다.
오전 7시 00분 안도역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식당에 가는 도중에
아파트 사이 화단에 만들어 놓은 꽃밭을 보았는데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두가지의 꽃이 심어저 있는
것을 보면 형식적으로 심어놓은 듯 보였습니다.
오전 8시 아침 식사를 한다음 투어버스는 연변의 안도역을 출발해서
10분도 안되었고 안도 시내도 다 빠저나오지 않았는데 차가 고장이 났다.
한참을 기다린 다음 안내하는 말은 안도 시내에 쉬는 차가 있으면 좋은데
없으면 회사에서 차가 와야되며 1시간30분은 걸려야 온다고 합니다.
큰일이다. 지금 곧바로 가더라도 시간이 빠듯할터인데 1시간 반이 소요된다니,
그것도 중국 시간을 감안하면 2시간이 걸릴지 3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결국 회사에서 차가 와야 된다면서 멀리 가지말고 차에서 내려
자유시간을 갖기로 하고 흩어젔다. 아무런 대책을 세울수 없는
우리 일행들은 중국이라는 타국에 와서 아야소리도 못하는 입장이다.
덕분에 안도 시내의 풍물을 구경할 수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처음 차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당나귀에 손수레 비슷한
것을 달아서 끌고 걸어가는 것을 보았고,
곧 이어서 옛날 어렸을 때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를 소가 끄는
우마차가 짐을 실어날랐는데 이곳에선 말이 끄는 우마차를 보았다.
차안에 있어서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아쉽다.
차에서 내리니 상가 앞에 과일 가계가 몇 집 늘어서 있고
티코만한 택시가 분주히 들락거린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곳이 버스 터미널 입니다.
또 하나 손수레 앞에 바퀴 하나를 더 붙이고 바퀴 위에 자전거
안장을 언저놓고 손수레 안에 일자 의자를 장착해 놓은 것이 많아서
가이드를 찾아가서 물어보았더니 그 것이 이곳의 택시란다.
티코 택시하고 자전거 택시하고 차이점을 물어볼 기회는 없었지만 아마도
언덕이나 먼 거리는 차가 가고 가까운 곳은 자전거 택시가 가는 모양이다.
지붕까지 있는 1인승 인력거 모양인 자전거 택시도 있다.
택시란 말을 듣고 그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보았더니 돈을 주고 스스럼 없이
타고 내리기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뿐만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 까지도
자전거택시를 운전하고 다닌다.
자연스럽게 능수능란하게 운전을 하고 가는 모습이
완전히 오래 전 부터 생활화된 것 같습니다.
30분 정도 이것 저것 구경하고 있는데 차를 곧첬으니까 빨리 타랍니다.
반가웠지요. 저녁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우리 일행중에 한분이
차 정비에 일가견이 있어서 고첬다는 겁니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중요한 날의 하루 일정이 엉망이 될번 했습니다.
안도에서 이도백화 ( 백두산 근처 ) 까지 3시간 30분이 소요된단다.
거의 다 와갈무렵 일행 중 한분과 언성을 높이는 싸움이 있었다.
현지 사정에 의하여 A코스(서파)는 갈수가 없다는 겁니다.
요즈음 백두산을 등반하면서 사고가 빈발하여
어제 부터 통제를 했다고 합니다.
A코스를 안갈려면 이 고생을 하고 산악회를 뭐하러 따라왔겠냐는 겁니다.
옳은 이야기이지요. 장백산을 타고 넘는다는 기대감으로
쉬운 길이 아닌 배편을 택해서 산악회를 따라 나섰는데 못간다고 하니
장시간 배와 기차를 타고 힘들게 왔는데 이유같잖은 이유 때문에 못간다니?
중국은 오늘 않되는 것도 내일은 되고 어제 되든 것도 오늘은 안되는 데가
중국이라는 나라라고 이론을 전개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차가 완전히 고물이어서 날씨는 더운데 에어콘이 약합니다.
가는 도중에 장뇌삼 파는 곳에 들려 잠깐 휴식을 취하는데
버스 여러대가 멈춰섰고 사진기를 갖은 사람 여러명이 뜰가에
예쁘게 핀 달맞이 꽃을 찍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도 있기는 한 것 같은데 남이 찍으니까 덩달아
나도 여러장을 눌러대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운 일이 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
앞 마당에 견본으로 장뇌삼을 심어놓았는데
어느새 꽃이피고 씨앗이 맺혀 빨갛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혹여라도 산에 가서 장뇌삼을 만나면 알아봐야 되니까
잊지 않기 위해서 가까이에서 DC에 담고 있는데,
이건 죽은 것이라면서 마른 잎이 되어있는 삼 두 뿌리를
뽑아 하나를 주면서 아직은 썩지않고 괜찮으니 먹어보란다.
어릴 때 시골에서 수박서리 닭서리는 해보았는데
나이들어 삼서리를 했다는 생각이 드니 입가에 웃음이 어립니다.
그 삼은 종이에 싸서 보관하고 있다가 어느 화장실 손 씻는 물에
대충 흔들어 흙을 털어낸 다음 꼭꼭 씹어서 천천히
보약이라 생각하고 먹어두었지요.
현지 가이드의 우스게 소리가 생각납니다.
옛날엔 길이 나빠 12시간을 버스를 타고 백두산을 갔는데
길이 하도 우둘투돌해서 펑크가 안나고 돌아가면 정상이 아니었단다.
차안에 에어콘이 시원찮아 창문을 모두 열어 놓고 달리는데 차가 서면
찜통이고 차가 달려야만 바람이 들어오니 이걸두고 가야콘이라고 했으며,
간이 화장실이 없어서 적당한 곳에 세우고 남자는 오른 쪽 여자는
왼쪽이라는 안내 말에 따라 양쪽으로 나뉘어 볼일을 보는 우스꽝스런
광경을 격어야 했는데 요즈음은 그래도 이정도라도 된다네요.
중국에서 토닭공이라는 요리는 닭요리를 뜻하며 계란은 온천물로
익히면 힌자는 안으로 들어가고 노른자는 밖으로 나오니
천지에 가는 길목에서 팔고있으니까 확인해 보라고 하면서
백두산 온천물의 효험을 간접적으로 강조합니다.
길거리에 피어있는 풀꽃들은 지난 봄 소백산 정상에서 보았던 것과 같고
백두산 천지에 갔다와서 부터는 저녁에 별로 할 일이 없으니
회식 겸 소 한마리 잡아서 구워먹자고 하네요.
산악회에서 따라온 가이드가 미리 말하기를 현지 가이드가 그런말을 하면
안한다고 말하라고 햇는데 소 한마리에 40~45만원 한다고 하니 한마리
잡아서 회식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여러분 계십니다.
23명이 소 한마리를 어떻게 먹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작은 송아지이기 때문에 충분히 먹을 수 가 있다고 합니다.
보기에는 이래도 깨끝하고 냄새가 전연 안 납니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홀인원.. (0) | 2006.10.27 |
---|---|
백두산 가는 길 (3 ) (0) | 2006.08.17 |
백두산 가는 길 ( 2 ) (0) | 2006.08.09 |
단양에 가면 구인사를.. (0) | 2006.07.08 |
마량포구 1박 2일.. (0) | 2006.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