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9시 30분쯤
어둠이 깔릴 때쯤 도착한 숙소는 깔끔했고
이른 아침 창 너머 뒤뜰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이
수영장과 어우러져 있어 하루를 여는 마음이 상큼해진다.
식사하고 차에 오르기 전
울타리에 꽃(유두화)이 눈에 들어온다.
9월 5일 월요일.
아침 07시 10분 폼페이로 출발.
08시 48분 휴게소 도착
차를 타고 가며 가이드가,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가이드가 해서는 안 되는 것 중의 하나라고 하며
폼페이 관광을 하는 동안 주의할 것 3가지는 말해 준다.
첫째 : 유적지에 들어가면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져,
화강암에 찌면 눈물이 나오도록 아프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둘째 : 입장료를 내고 관광하는 곳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한다.
셋째 : 개를 만지지 마라.
이곳 사람들은 휴가 갈 때 키우던 개를 버리고 간다.
그래서 개가 흔하지만 예방접종 등 관리가 안 돼있다.
9시 50분 폼페이 도착.
폼페이(Pompeii)는 ,
이태리 남부의 사루누스강 어귀에 세워진 항구 도시로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여름철 휴양 도시였는데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인해
흔적 없이 사라졌던 비운의 고대 도시다.
지금은 육지로 변했지만 도시는 아직도 발굴 중이며
현재 70% 정도만이 발굴된 것이라 한다.
이 계단을 오르면 곧바로 20만평 위에 세워진 도시가
폐허로 변한 유적지가 펼쳐진다. ▼
언덕을 올라 폼페이 관광을 시작하는 입구인(관광객들이 서 있는곳)
포르타 마리나(Porta Marina. 항구로 통하는 문이란 뜻),
이문을 따라 둘레가 약3km에 이르는 방벽이 둘러있고
지역의 넓이는 약63ha에 이르며 이문을 통해 언덕길을 올라서면
폼페이의 가장 중심인 포로 (Foro) 이다.
벽화 입니다.
포로 (Foro)=중앙 광장은 각종 행정기관과 주피터 신전,
공회당, 상품거래소, 등이 있어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뒤로 문제의 베수비오산이 보인다.
내막을 알고 나니 아름답다고 말할 수가 업네요.
폼페이의 수호신인 베누스 폼페이아나의 신전,
신전 앞에 제단이 있다.
중앙 광장 근처의 창고에 발굴된 그릇과 항아리
기둥 잔해 등과 함께 "캐스트"가 전시되어있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 폼페이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졌을 때
이태리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넬리 (Giuseppe Fiorelli, 1823- 1896)는
유기물이 다 분해되어 속이 텅 빈 상태의 딱딱한 화산재 덩어리에 구멍을 뚫은 후
그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인간의 주음과 가구 그릇 집기 등을 복원해내게 되었는데
이를 캐스트라 한다.
현재 박물관이나 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 폼페이 사람들과 물건들의 모습이
이 방법을 통해 생생히 되살아난 것이라 한다.
몸이 뒤틀려 죽어있는 개는
그 당시의 참상을 실감 있게 말해준다.
앉아서 죽은 마부는 전형적인 질식사의 모습이란다.
뜨거운 화산재의 열에 견디질 못해 입과 코를 막고 죽어있다.
비운의 도시 폼페이를
성경적으로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향락과 퇴폐에 빠져 살아가던
항구도시 폼페이에 하나님이 재앙을 내린 것이라 한다.
만약 오랜 옛날 우리나라에 이러한 엄청난 일이 발생했다면
아마도, 하늘이 노하여 천벌을 내렸다고 했을 것이다.
요즘 어느 곳에 큰 화산이 분출했다면
지구촌의 얼마 되지 않은 미개지를 빼놓고
하늘님이 내린 천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요.
과학의 발달로 동물도 식물도 복제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 같아 인류의 대 재앙을 생각하며
조금은 두려운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은 땅에 엎드린 채로 눈과 코를 막고 죽어있다.
중앙 광장욕장(Teme del Foro).
현재의 목욕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리석 욕조뿐만 아니라 온탕과 냉탕 사우나실 까지
갖추어져 있어 발달했던 폼페이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이곳은 음식물을 만들었던 화덕들로 보아 식당이나 술집. ▼
입구에 돌에 파인 문틀자국은 미닫이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된다.
이 도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요즘의 도시계획처럼
직선으로 된 도로와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다.
도로 사이에 있는 3개의 돌은 비가 오거나
길에 오물이 많을 때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빠른 속력으로 달리는 마차의 급 제동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큰 거리 중심으로 각종 신전과 상점,
일반 주택, 공공 시설물들이 모여 있는데
공중목욕탕, 빵집, 선술집, 사창가 등등
현재 유적지가 된 폼페이에
당시의 식물들이 지금까지 자라고 있다.
이 식물들은 건물 속에 뿌리를 박고 약한 건물 사이에서
계속 성장을 하며 건물들을 붕괴시키고 있어 심각하다고 한다.
베이커리 =빵집
앞에는 밀을 빻는 맷돌이 있고
뒤에는 빵을 구워내는 화덕이 있다.
이곳은 폼페이를 방문한 모든 여행객이 방문하는 곳,
늘 분비는 곳이어서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인간은 너, 나 없이 성에 대해 관심이 많나 보다.
루파나르의 유곽은
아래층과 위층에 각각 5개씩
조그마한 방 10개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벽에 누드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매춘이 이루어진 장소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은 로마 귀족들의 호화별장들이 자리잡은 휴양지로
기후가 온화하고 쾌적하여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였고
경제적으로나 사회, 문화적으로나 풍요로운 도시였다.
폼페이는 뱃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으로
배를 타고 온 뒤 맨 먼저 찾는 곳이 술집과 윤락였다고 한다.
향락문화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끓어오르는 욕망과 불만,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준다.
로마의 전성시대에 향락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것도
유곽을 나오는 문.▲
돌로 만든 수로를 통하여 도시에 흘러 들어온 물은
10개 이상의 시내 수조에 저장되었다가
바닥에 깔린 수도관을 통하여 시내 곳곳에 공급되었다.
길모퉁이마다 공동 수도전이 세워져 있어 있다.
반듯한 도로와 수도까지 있는
이곳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35세.
문란했던 성 문화로 인한 성병과 함께
납 파이프로 만들어진 수도관 대문인지
납 중독이 주된 사망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원형극장
둥근 원처럼 쌓아서 소리가 퍼지도록 만들었고
실제로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 맨 뒤까지 들린다고 한다.
화려한 옷을 입고 활기차게 걸어가는 분이
서울에서부터 끝날 때까지 함께한 가이드님.
이곳이 약 2.000년 전엔 바다여서 절벽이 많다고 한다.
여기에서 사진 몇 장 찍는 동안 식당에 들어간
일행을 못 찾아 헤매느라 점심을 굶었다.^^^
입구에 멋있게 서있는 "우산소나무"를 뒤로 하고
폼페이 관광을 마친다.
참고로 우산소나무의 잎은 두 개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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