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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쓴 글

마른 가지는 심어도 싹이 안 난다.

by 미남님 2024. 6. 9.

 


마른 가지는 심어도 싹이 안 난다.

몇 년 전 앞 화단에 심어놓은 감나무에 
22년 처음으로 감꽃이 피고 가을엔 
탐스럽게 생긴 감이 몇 개 열렸는데 
누군가 염치없는 사람이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따갔다. 

23년에는 20 개 정도 열려서 
혹시나 해서 감 따가면 신고하겠다는 
표시판까지 세워놓았는데 

지난해 그분이 반절은 감쪽같이 따가고, 
안 되겠다 싶어 나머지는 약간 덜 익었지만 
따서 놓아두었더니 말랑말랑한 홍시가 되어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봄이 되어 올해는 100개 열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정성스레 가지치기를 하고 
굵은 가지 몇 개를 골라 사용할 목적으로 
현관문 옆에 세워놓았다.

옥상에 몇 평 만들어 놓은 텃밭에도 한쪽에 
7그루 심어놓은 아로니아가 몇 년 자라서 
찌르레기(새)가 먹고도 20 kg 정도 수확되는데 

문제는 22년 포도나무 2그루를 반대편에 심어서 
제법 자라고 자리를 잡으니 상추 가지 호박 등등 
심을 자리가 부족해진 것이다.

 

그래서 아로니아 2그루를 뽑아놓고 
버리려고 생각하니 몇 년 동안 가꾸면서 
정이 들었던지 마음이 아프다,

말 못 하는 나무이기는 하지만 그냥 버리고 싶지 않아 
옆에 있는 공원에 가져다 심을 까 어쩔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근처에 사는 안사람 친구가 
2년 전 새끼가 생기면 분양해 달라고 했다는 말이 
생각나서 혹시 심으실 건가 물어보라고 했다. 

 

전화를 걸어, 
신호는 가는데 통화가 안된다.
오후 시간이 절반쯤 지난 것 같은데 전화가 왔다. 

『전화했는데~ 그래 무슨 일 있나』 
악센트 강한 경상도 말에 소리가 커서 
옆에 있는 내 귀에도 잘 들린다.

『예 언니 궁금해서 전화해 보았어요 
그런데, 언니~ 혹시 아로니아 심으실래요』
『그게 어디 있나, 주면 좋지』
『예 그러면 두 그루를 옥상에 뽑아놓았는데』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가지러 갈까?』
『아니요 나무가 커서 언니 혼자서 못 가져가요, 
현관문 옆에 내려다 놓을 거니까 남편분이나 
아드님 퇴근하고 오시면 함께 가져다 심으세요』

 

흙까지 부쳐서 큰 비닐에 담았는데 
한 개가 20kg은 족히 넘는다

시간이 흐르고 어두워졌는데 소식이 없다,
궁금했는지, 가져갔나 보고 온다며 
내려갔다 오더니 아직 안 가져갔다고 한다

『가져간다고 했으니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지』

느긋하게 한마디 거들고 
저녁을 먹기 위하여 식탁에 앉는다 

 

막 식사를 하려는데 전화가 벨이 울린다. 
안사람이 잽싸게 전화기를 집어든다

『예 언니 가져가셨어요?』
『이거 갔다가 잘 심어놓았다. 
그런데 이게 살겠나』
뭔가 이상기류를 감지했나 보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여서
안사람은 자기 생각만을 이야기한다.

『아이고 언니 
심고 물을 후북이 주면 잘 살아요
우리는 여기서 20kg씩 땄어요』

"그렇나~ 』

이렇게 통화를 끝내고 가져가서 
잘 심었을 거라 믿고 하룻밤이 지났다.

 

궁금한지 아침 식사를 하고 
산책하러 가면서 하는 말, 
『그쪽으로 가면서 잘 심었나 보고 가야지』
『그래 한번 봐봐』
 
밖에 나갔다 들어오니 점심때가 되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탁자에 앉는데 
뭔가 말할 듯 말 듯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히죽히죽 웃는 폼이 
무슨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뜸을 들이고 말은 안 하니 
나도 몹시 궁금해진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가 싶더니 
드디어 말문을 연다.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네』
『무슨 일인데~』
"아침에 가면서 보니까 
안 가져가고 그대로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잽싸게 전화해서"

『아니 언니 가져가신다고 하더니 
왜 안 가져가셨어요?』
하고 말했더니
『아니다 가져다가 잘 심어놓았다』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언니 내어놓은 거 
안 가져가서 그대로 있는데요』 
"이렇게 말했더니"

『아니다~ 가져다가 다 심어놓고 
물을 후북하게 주라고 해서 밤에 
그거 물 떠다 주느라고 옷이 다 젖어서 
세탁기에 던져놓았다』 

『아니 언니 그거 감나문데 바싹 말라갔고 
아무리 잘 심어도 싹이 안 나요'
비닐봉지로 싸놓은 거니까 
얼른 가져다 심으세요』

통화를 끝내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점화벨이 울려 받는데 기분 좋은 목소리로
『그러면 그렇지 이래야 살지』
와서 확인했나 보다

『우리 집 아저씨가 
전지를 다 해놓아서 심기만 하면 돼요』

 

전화를 끝내고 어찌나 우수은지 
배꼽 잡고 웃었다고 하면서
그 여운이 내가 밥상머리에 앉자마자 
이 이야기를 하려니 다시 웃음보가 
터져 참느라 애썼던 모양입니다.

산책하고 돌아오면서 보니 잘 심어져 있어 
전화했더니 영감님 하고 함께 가져가서 
심었다고 한다.

 

한 달 전 감나무 가지치기를 해서 굵은 가지 
여러 개를 골라 현관 옆 구석지에 세워놓은 
바싹 마른 감나무 가지,

이미 말라빠져 그걸 가져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옥상에 호박을 심고 
넝쿨 올리려고 잠시 놓아두고 미쳐 못 올린 건데  
밤중에 이걸 가져다가 심어놓고 옷이 다 젖도록 
정성 들여 심고 물을 주며 옷까지 젖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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