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모님의 얄궂은 딸.. ◎
추석을 몇 일 남겨 놓고
박스 하나가 소포로 배달되어 왔다.
나의 마누라,
밖에서 들어오더니 반기며 풀어본다.
간장에 조려먹는 풋 고추가 들어있고
몇 가지 시골의 특산물이 덤으로 따라왔는데.
별로 관심 없어 장조림 하겠거니 생각했지요.
추석이라 해서,
삼풍 아파트에 있는 큰아들 집에,
시골에서 올라오신 장모님이 계셔서
추석날 오후에 들렸더랬습니다.
그리고 장모님과 함께
우리집에 몇 일 계시기로 하고 집으로 함께 왔지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하여 원탁 식탁에 앉았는데
장모님의 딸은 손수 썰어 담은 고추 접시를
엄마를 위하여 챙겨서 장모님 앞에 놓습니다.
딸 왈
『 엄마 !
이거 맛있어요.
이거 뭔지 아요.
이거 엄마가 보내준 걸로 담은 건데 되게 맛있어요.』
간장이 스며들도록 고추 끝을 자르고
간장을 끓여서 부어 만든 고추 간장 장아치라 할까 ?
이거 몇 개를 간장과 함께 1㎝ 정도로 먹기 좋게 잘라
접시에 담아 놓은 고추를 맛있다고 자꾸 말하니,
88세 된 장모님이 믿어 의심치 않고
한 개를 집어 맛있게 씹으시더니
이내 곧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곧바로 알아차리고
『너무 매우면 저~쪽 쓰레기통에 뱉으세요.』
라고 말씀 드렸지요.
그런데 장모님께서는 오랫만에
그리고 모처럼만에 온 사위집에서
그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은가 봅니다.
있는 인상 다 쓰시면서
한편으로는 감추시면서
기어코 뱉지않고 『 스~ 스~ 』 하시면서 드십니다.
슬쩍 곁눈질로 엿보니까,
눈가에 자박자박 고여있는 눈물을
훔치는데 곧바로 또 고입니다.
얼마나 매운지 이것 저것 입에 넣고 씹어도
쉬이 가라앉지 않은가 봅니다.
그런 장모님의 고통스런 모습을 보면서도
딸년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 조금 매웁기는 해도 맛있지요 엄마아. 』
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 합니다.
추석 전날 부터 문제의 그 고추를 상에 올려놓고
먹어보라고 하기에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살짝 깨물어보니 심상치가 않아 뱉어버렸지요.
이렇게 해서 제 일막은 끝났는데,
제 이막은 이튿날 아침 식사 때 시작 됩니다.
역시나 원탁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는데
딸의 간곡한 효심이 발동합니다.
『 엄마 ! 고추가 왜 이렇게 매웁다요.
안 매운 것을 달라고 하니까 이렇게 매운 것을 주셨오 ! 』
장모님께서는 믿기지 않은듯.
『 안 매워,
하나도 안매운디 우쩌그런다냐.
매운 것이 쪼~끔 들어갔는가~ ? 』
시골 집에서 드실때는 진짜 안 매웠던 것 같습니다.
『 어떤 것은 매웁고 어떤 것은 안 매웁고,
그런데 맛있어요 엄마.
되게 맛있어요 엄마. 엄마 한번 먹어보세요.』
어제 저녁 식사하면서 혼쭐이난 장모님
반신반의 하면서도 쉽게 드실 것 같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딸의 효심도 대단합니다.
『 안매워. 잡수시오 엄마. 맛있어요.
어쩌다 하나씩 매운 것이 있는데 되게 맛있어요 엄마.
잡숴보세요. 잡숴보시라니까요.
되게 맛있어요 엄마.
진짜 맛있으니까 하나만 드셔보세요 엄마.』
이렇게 진지하게 간곡히 권하는 딸의 말에
장모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내 머리 속엔
저놈의 딸래미가 왜 저렇게 집요하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집요하게 권하는지 모르지만
쉽게 두 모녀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지가 않습니다.
손수 안매운 것으로 보내준 고추가
그렇게 맵다는 것이 믿기지 않은듯
다시 한번 맛을 보고 어쩌다 하나정도
맵다는 것을 확인해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이런 숨가쁜 순간에도
진즉에 아줌마가 되어버린 딸래미의
집요한 유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갖가지 맛있다는 미사어구를
쉼 없이 늘어놓는 이유를 지금도 모릅니다.
왜 그랬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결국은 이런 저런 생각 복잡하게 어울어져,
젓가락으로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조심스럽게 씹으시는 장모님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사위녀석은
은근히 안 매웁기를 바래보지만 걱정스럽습니다.
그 순간 반신 반의하던 장모님의 표정은
또다시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달라지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음식물 쓰레기 있는 곳을 향하여 내닫습니다.
어제밤에 차린 체면 때문에 몹시 고생했던지
오늘 아침엔 미리 생각하고 있었던듯 얼른 뱉으시고는
수도물에 입안을 행구었는데도 별 소용이 없나봅니다.
『 스~ 스~ **** 』하시면서
이것 저것 입에 넣으면서 입 안을 달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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